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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쿼바디스에 나온 장면으로 유명한 로마 대화재. 한 도시가 통째로 화염에 휩싸인 커다란 재난이었는데 역사는 이를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네로의 소행이라 하고 있다. 네로는 정말 로마 화재를 일으켰을까?
로마 대 화재
기원전 1세기 로마는 매우 번영한 국가였고 한때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이 도시는 한 차례의 불길로 말미암아 폐허가 되어 버렸다. 도대체 누가 불을 지른 것일까? 일반적으로는 당시 로마 황제였던 네로가 로마 화재의 책임자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가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네로는 정말 로마 화재의 책임자인가?
서기 64년 7월 18일, 로마 성내의 원형경기장 근처에 무시무시한 화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날 분 바람 탓에 불길이 빠르게 번져 9일 동안이나 진압되지 않았다. 결국 로마 성 내의 14개 지역 가운데 10개 지역이 피해를 입었고 그중 3개 지역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나머지 구들도 불에 타 무너진 잔해만 남았다고 한다.
이는 로마 역사상 가장 큰 화재로 기록되었다. 불길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 갔으며 웅장하고 장엄한 로마의 궁전과 신전, 그리고 공공건물들도 모두 집어삼켜 버렸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빼앗아온 금은보화와 예술품, 그리고 불후의 명작들도 모두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로마만의 불행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큰 손실이었다.
네로의 폭정
당시 사람들은 네로 황제가 불을 지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믿었다. 네로 황제는 로마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난폭한 왕으로 손꼽힌다.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그는 심성이 음흉하고 권력을 좋아하는 어머니 아그리피나(Agrippina Major)의 슬하에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독한 여자로 서기 54년 잔혹한 방법으로 네로의 아버지인 클라우디우스(Mattias Claudius)를 독살했다. 아버지가 죽자 17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된 네로 황제 역시 난폭하고 잔인했으며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았다.
물론 처음부터 폭군은 아니었다. 그가 어렸을 때는 당시 스토아 철학의 대가이자 정치가였던 세네카의 지도를 받으며 나름 선정을 베풀었다 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그의 안에 내재되어 있던 분노가 표출되면서 저점차 폭군으로 변해 갔고 결국 자신의 스승이기도 했던 세네카에게 마저 죽음을 명하게 된다.
그는 궁중에서 각종 경기와 연회를 열어 시녀들의 몸에 값비싼 귀금속을 걸고 나체로 춤추게 했다. 그는 한 나라의 군주임에도 정사는 전혀 돌보지 않고 술과 여자에만 빠져 지냈다. 그는 또 스스로 다재다능한 예술가라 칭하고 다녔다. 그러한 모습이 영화 쿼바디스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시인, 가수, 악사나 투사가 되어 직접 무대에 올랐으며 로마의 연주가들을 이끌고 그리스로 건너가 공연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이 같은 황제의 사치와 향락으로 로마 국고는 날이 갈수록 기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대로 세금을 늘리고, 심지어는 온갖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기도 했다. 결국 로마 시민들은 귀족과 평민을 막론하고 모두 네로 황제의 폭정에 분노를 느꼈다.
불타는 로마를 보며 노래하는 황제
서기 64년 네로 황제는 로마 성내에서 발생한 화재에 수수방관했다. 그뿐만 아니라 직접 방화를 사주했다고 알려져 무시무시한 화재의 방화범으로 많은 사람의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더욱 어이가 없는 일은 그가 로마 성내에 불을 지르도록 한 이유는 단지 낡고 오래된 로마 성에 염증을 느껴서, 혹은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는 장관을 보고 싶어서라고 한다. 믿기 어렵지만 그는 화재 당시 자신의 무대(화원 안에 있는 누각)에 올라 불길에 활활 타오르는 로마의 모습을 구경했다고 한다.
또 그는 잔인한 불길에 휩싸인 도시를 보며, 악기 반주에 맞추어 고대 그리스의 트로이 성이 몰락하는 장면을 묘사한 시구를 읊조렸다고 전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로마가 대화재로 입은 상처에서 회복되기도 전에 팔라틴(Palatine) 산자락에 황금으로 된 궁전을 지었다.
이 황금 궁전은 금과 옥으로 장식되었을 뿐 아니라 그 안에 정원, 전원, 호수, 연못, 동물원도 갖추고 있어 보는 사람의 감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궁전 내부는 또 황금과 보석 및 진주로 장식되어 그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식당의 천장에는 상아 장식이 들어가 있고 수도관에서는 향수가 철철 넘쳐흘렀으며, 연못 안에는 바닷물과 시냇물이 혼합된 물이 담겨 있었다. 네로 황제는 이 호화로운 건축물을 보고 '이곳이야말로 사람이 살 만한 곳이다.' 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또 네로 황제는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수도를 지으려는 구상도 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백성의 불만을 무마하고자 다른 속죄양을 찾아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을 방화 용의자로 지목하며 그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네로 황제는 이를 통해 사람들의 비난의 화살을 기독교도들에게 돌리려 했으나 이 우스운 계략은 오히려 네로 황제의 음흉한 심성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었다.
네로가 로마 화재의 책임자인가?
새로운 도시 건설 설
과연 네로 황제가 화재를 지시했다는 것이 사실일까? 이에 관한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서로 다르다.
고대 로마 사학자인 타키투스(Tacitus)는 네로 황제가 불을 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제가 로마 성을 불태워 폐허로 만들어 버리고 새로운 궁전을 지으려 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 근거로 불길이 아이밀리우스(Lepidus, Marcus Aemilius라는 로마 정치가의 이름을 딴 지역-역주) 구에서부터 시작된 점을 들었다. 이는 네로 황제가 그의 이름으로 된 새 도시를 짓고자 하는 허영심에서 불을 질렀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생각만 했다는 설
그러나 네로는 실제로 방화를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럴 생각만 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다. 러시아의 한 학자는 네로는 단지 로마에 불을 지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낡은 로마에 불만을 품고 있던 네로는 단순히 새로운 로마를 만들고자 옛 성을 불태우고 싶어 했던 것이다.
예술적 이유 설
한편, 활활 타오르는 도시를 보면서 위대한 예술 작품을 창조하기 위한 영감을 얻고자 했던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은 모두 사실과 다르다. 화재는 그저 우연히 발생한 것일 뿐이며 7월 보름달이 떴을 때부터 일어난 화재를 통해 볼 수 있는 불의 미학적인 효과가 미미했을 것이므로, 네로가 아름다운 불길을 구경하기 위해 고의로 화재를 냈다는 주장은 일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네로 로마 화재 결론
하루아침에 폐허로 변해버린 위대한 로마 제국의 운명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비록 네로 황제가 방화를 지시했는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지만, 당시 악명 높은 폭군으로서 네로 황제는 로마의 멸망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래서 어느 조직이건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 기업이 무너지는 것은 일 못하는 사원의 책임이 아니라 의사 결정을 하는 사장의 책임이 크다. 나라가 망하는 것도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지도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러나 어리석은 군주가 나라를 운영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은 국민의 책임이다.